April 20th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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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양팡팡 2020. 3. 21. 17:0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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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가진 수 많은 단점 중 한 가지는 긴장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. 특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급격하게 상황이 바뀌는 경우에 심각하게 긴장을 한다. 또 그런 내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짐짓 여유있는 척, 멘탈 오지는 척 너스레를 떨곤 하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추해보일 수가 없다.

하지만 막상 새로운 상황에 닥치면 일을 곧잘 해내곤 하는데 (ㅎㅎ), 그건 내가 임기응변에 뛰어난 무대체질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시나리오를 한 번쯤 걱정해놨었기 때문이다. 예를 들어 "갑자기 똥마려우면 어떡하지?, 저녁을 굶고 아침에 똥을 세 번 싸자." "USB 잃어버리면 어떡하지?, 메일로도 보내놓자." "발표대본 인쇄한 거 잃어버리면 어떡하지?, 발표대본 외워서 가자." 이런 피곤한 성격 때문에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볼 때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, 이것도 개 웃긴 썰이니 이건 다음에 얘기해보자. 

이제부터 내가 적어보려는 약 일주일 간의 기록은 모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을 때의 기록이다. 나는 이 날 매일 최악의 가능성을 여러 개 떠올리고, 그걸 어떻게 대비할지 대책을 세우며 잠이 들었는데 (사실 잠을 못 자는 날도 많았다.) 하루하루가 예상을 뛰어넘는 하루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기 때문에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. 

 

새로운 과에서 첫 출근을 하게 된 날, 정규 업무를 하려고 출근을 했다. 출근을 하자마자 하는 일은 (병원마다 다르겠지만) 육잡이었다. 우린 보통 아침 6시에 하는 일 job 이라고 해서 육잡이라고 불렀으며 급하게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같이 해야하는 일들을 말한다. 병원마다, 과마다 큰 차이가 있겠지만 정기적인 소독, 동맥혈 채혈 검사, 무균적 채혈검사, 중심정맥압 검사등등이 해당된다.

보통 동선을 아끼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같은 병실에서 해야하는 일들을 한 번에 가져가서 시행하는 것이 보통인데, 첫 병실에선 동맥혈 채혈 검사 1개, 중심정맥압 검사 1개가 있었다. 그 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오시더니, "환자분 한 분 께서, 화가 많으신 분이시니 친절하게 잘 대해주셔라"는 말씀을 전해주셨다. 사실 나는 환자분들에게 설명을 잘 해주거나, 손으로 술기를 하는 것에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켰다. "그래? 완전 친절하게 한 방에 성공해서 인정받아야지!" 하는 허세, 지금 생각하면 이 얼마나 어리고 바보같은 마음가짐인가.

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기 전에. 검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동맥혈 채혈 검사는 말 그대로 동맥에 바늘을 꽂아 피를 뽑는 검사이고, 중심정맥압검사는 이미 중심정맥에 연결된 관에서 그 압력을 재는 검사이다.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통증을 유발하는 동맥혈 채혈 검사 환자분이 화가 많으신 분이지 않겠는가? 매일 아침, 혹은 이틀에 한 번 새벽같이 바늘로 찔러대는데 화가 안 많아지시면 그게 이상한거지. 나는 쉼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성함을 확인하며 그 분에게 다가갔다. 큰 무리없이 한 방에 성공했고 나는 자아도취에 빠졌다. 그 우월감이 가시기도 전에 중심정맥압검사를 해야하는 환자분들에게로 이동했다.

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..... 이따 써야지 ㅠ3ㅠ.........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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