April 20th/직장

ㅈㄲㅈ

양양팡팡 2023. 10. 5. 15:4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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드디어 앓던이가 빠졌다. 계속 바꿔달라고 요청했던 근무복 사이즈가 1년만에 수정된 것. 그걸 기념해서 남기는 글

 

 


 

 

작년에 이 병원으로 옮기면서 근무복을 등록했는데, 이상하게 XXL가 배정되었다. 근무복 XXL는 상위 1%의 형님들을 위한 옷이어서 특수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큰데, 체격이 작은 내가 그걸 입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.

 

하지만 사이즈가 잘못 배정되었다는 것을 야간 응급수술 들어가려다가 알게되어서 어쩔 수 없이 입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경험해본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,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유두를 깐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. 나 역시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몰랐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당황스러웠다. 최대한 젖꼭지를 가리려고 옷을 끌어올려서 어깨쪽으로 내렸다. 무슨 이브닝 드레스 처럼 되어버렸지만 "옮긴 직장에서 초면인 직장동료 만날 때 유두까기 VS 쇄골까기"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다들 쇄골을 고를 것이다.

 

 

 

 

옷을 이브닝 드레스로 만들고 손을 씻었다. 손을 씻고 나서는 절대로 멸균소독된 것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만져선 안 된다. 문도 발로 열고 들어가는데 이브닝 드레스가 점점 흘러내려가더니 유두까지 내려갔다.

 

유두까기 VS 쇄골까기에서 나름의 선택을 했으나, 유두와 쇄골을 동시에 깐 상태로 직장동료를 처음 마주 했다. 옷을 올릴 수도 없는 상태로, 순환 간호사선생님한테 스크럽 가우닝을 해달라고 말씀드렸다. 죽고싶었다.

 


 

 

 

그 이후로 사이즈 좀 바꿔달라고, 제발 제발 좀 제발 부탁을 했는데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고 사이즈 변경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. 나는 어지간하면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인데, 마지막쯤에는 너무 화가났다. 아니 이게 왜 안 돼? 걍 수술복 기계에 사이즈만 바꿔서 입력하면 되는 거 아니야? 아니면 내 데이터 삭제하고 재등록 하면 되는 거 아니야?

 

유치하지만, 수술복 변경 A4지에 크게 항의성 글을 남기기도 했다.

 

 

남은 직장생활을 쇄골유두맨으로 할 수는 없으니 지난 1년동안을, 남들이 입고 버린 옷을 수거함에서 꺼내서 입었다. 힘든 수술을 하다보면 땀이 꽤 많이난다. 나도 누가 땀 진창 흘린 옷 입고 싶진 않으니까 수거함에서 꺼내서 냄새 맡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슨 변태처럼 보였나보다.

 

"아니, 선생님.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?"

 

하고 어머니뻘 되시는 직원분께서 말씀하시는데 1년동안의 설움이 터져나왔다. (그것보다도 여기서 잘 못 대답하면 직장에 변태로 소문날 것이라는 나락을 감지했다.) 그렇게 울분을 토하고 나니까, 그럴리가 없다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. 뭔가 경험이 많은 분 같았다.

 

결국! 지난주! 1년만에 사이즈 제대로 변경해서 깔끔한 근무복 입고 근무하기 시작했다. 이런 사소한 것으로 행복해지다니... 더 열심히 일 할 거에요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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